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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영 동아일보 제주주재기자, 세계10대울트라트레일러닝 가운데 하나인 레위니옹 166km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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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영 동아일보 제주주재기자, 세계10대울트라트레일러닝 가운데 하나인 레위니옹 166km 완주
  • 승인 2019.11.0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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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도로를 달리는 마라톤과 달리 산과 들판, 하천 등을 뛰고 걸으며 자연을 즐기는 트레일러닝이 최근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임재영 동아일보 제주주재 기자가 세계 10대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 가운데 하나인 166㎞ 레위니옹 그랑래드를 완주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회 장소가 낯설다. 어떤 곳인가?

 아프리카 남동쪽에 마다가스카르가 있는데, 바로 옆에 자그만 섬이 레위니옹이다. 프랑스 자치령으로 인도양 최고봉인 네쥐 봉우리(해발 3070m)와 세계 5대 활화산으로 꼽히는 푸르네즈 봉우리가 있는 곳으로 섬의 43%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면적은 제주도의 1.4배, 인구는 80만 정도로 해양스포츠와 협곡 등을 즐기는 휴양지로 유명하다. 유럽에서 ‘프랑스의 파라다이스’로 불리고 있다.

 어떤 대회인가

 ‘그랑 래드’(Grand Raid)가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 열렸다. 이 대회 메인 종목인 ‘디애그날 디 푸’(Diagonale des Fous)는 166km 레이스로 세계 10대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 가운데 하나다.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40여개국 2715명이 몰려들었다. 종목 이름인 디애그날 디 푸는 ‘미친 사람들의 대각선’이라는 뜻으로 섬 남쪽에서 북쪽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종주하는 코스이다. 코스의 오르막을 모두 합친 누적 상승고도는 9600m로 수치상으로 본다면 한라산 관음사탐방로 코스에서 정상인 백록담을 6번 왕복하는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대회를 꼽을 때 반드시 포함되는 레이스이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어떠했나.

 바늘로 찌르는 듯한 무릎통증이 어느새 사라지고, 의식마저 또렷해지면서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가슴이 벅찼다. 심장 박동은 강해지면서 온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느낌이었다. 레위니옹 생드니 Redoute 경기장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길고 긴 레이스에 종지부를 찍었다. 제한시간 64시간 이내인 57시간38분18초로 완주에 성공했다.

 이 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는 것인가.

 험악한 코스도 문제였지만 밀려드는 졸음과는 사투를 벌였다. 깜빡 졸면 낭떠러지로 굴러갈 위험이 있는 좁은 능선을 지날 때는 뺨을 수없이 때리고 꼬집었다. 한번 잠들면 깨나지 못한 채 레이스를 마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쉽게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최대 고비로 여겼던 112㎞ 지점 마이도(Maido) 절벽를 넘고서야 코스 옆에서 쪽잠을 청했다. 알람을 맞춰 둔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진동에 잠을 깼다. 깨어난 순간 ‘나는 지금 어디?’ 라는 의문이 들었다. 멍한 상태로 앉아 있다가 3~4분이 지나서야 레이스를 하려고 레위니옹에 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40분의 쪽잠을 잔 뒤 몸도 훨씬 가벼워졌다. 120㎞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코스 옆에 쪽잠을 자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였다. 다른 선수들 역시 잠과의 전쟁을 벌인 것이다.

 대회 코스는 어떠했나?

오르막을 넘으면 내리막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거의 수직경사에 가까웠다. 절벽에 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갈지(之) 자’ 형태였다. 날이 밝은 이후 풍경을 보니 제주와 닮은 점이 많았다. 여러 분화구는 제주의 오름(작은 화산체)과 비슷했고 삼나무 숲, 길가에 핀 개망초, 비파나무, 고비고사리 등도 너무나 익숙했다. 특히 레이스 내내 발을 괴롭혔던 돌길은 한라산 탐방로나 둘레길 바닥과 다를 바 없었다. 토심이 얕아서 나무의 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것도 비슷했다. 레위니옹과 제주가 화산섬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레이스를 끝낸 소감은?

세 번의 밤과 세 번의 아침을 맞이하고 나서야 기나긴 레이스를 끝냈다. 시원해지는가 싶더니 추워지고,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더워지는 날씨였지만 비를 맞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화산활동이 만든 경이로운 자연경관, 그 속에서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의 속살을 체험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바닥까지 탈탈 털어내는 고난도 코스, 장엄한 경관 등은 세계에서 도전자를 끌어들이는 마력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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