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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평화의 일꾼으로 살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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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평화의 일꾼으로 살아갈 것”
  • 승인 2020.11.1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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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은퇴 감사미사, “여러분도 평화의 길에 동지가 되어주시길…”
▲ 17일 저녁에 열린 은퇴 감사미사에서 미사 강론을 하고 있는 강우일 주교.
▲ 17일 저녁에 열린 은퇴 감사미사에서 미사 강론을 하고 있는 강우일 주교.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베드로 주교가 17알 오후 8시, 한림읍 금악리 이시돌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린 은퇴 감사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교구장으로 임한 지난 18년을 돌아보며 소회를 밝히고 “(퇴임한 이후에도) 평화의 일꾼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강 주교는 “귀국해서 서울에서 한참 살다가 이제는 태어난 곳에 돌아와서 내가 안정된 삶을 살게 되나보다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제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제주교구장으로 부름받았을 때를 회상하면서 “지금 돌아보면, 도민들의 아픈 역사를 조금이라도 함께하도록 하느님께서 저를 보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술회했다.

 그는 “4.3 때 제주도민이 얼마나 많이 죽임을 당하고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고 그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70여년을 살았는지를 알게 되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주도민들 뵙기에 너무 죄송하고 가슴이 따가왔다”며 4·3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 동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강 주교는 “고기잡이와 밭농사밖에 모르던 순박한 사람들 위에 어느날 갑자기 좌우 이념의 굴레가 씌워져서 마치 숲속의 토끼 마냥 사냥을 당하다가 잡혀 죽거나 아니면 몰래 타향으로 도망을 쳤다”면서 4·3 당시 제주도민들이 겪어야만 했던 처참한 기억을 들춰냈다.

▲ 17일 저녁에 열린 은퇴 감사미사에서 미사 강론을 하고 있는 강우일 주교.

 그러면서 그는 “제가 일본에 살았을 때 왜 재일교포 중에 제주 사람들이 많은지 몰랐다. 왜 재일교포들이 북한으로 가는 북송선을 타야 했는지 못알아 들었다”며 "제주에 와서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군대와 경찰이 국민을 사냥했고, 그들은 결사적으로 도망을 쳐서 국내 타지로 몰래 숨어 들어가거나 아니면 밀항선을 타서 일본으로 도망을 친 것"이라고 재삼 강조했다.

 이어 ”4.3 때 여러 가지 사료들을 제가 들여다보다 보니까 군경을 향해서 총을 들고 봉기했던 좌익 무장대 사람들, 그 무장대 대장도, 그리고 그들을 진압하고 토벌해야 했던 국방경비대 사령관도 모두 같은 20대 청년들이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민족을 생각하는 피끓는, 같은 나라를 사랑하는, 민족을 사랑하는 그런 젊은이들이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분단은 단순히 3.8선의 지역적 경계가 아니라 피를 나눈 같은 겨레, 같은 동네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철천지원수처럼 적대하도록 타율에 의해 강요된 사회적 분단임을 새삼 깨달았다“면서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과거 이 섬사람들에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러 놓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 군대를 보내서 강정마을 주민들을 두 쪽으로 갈라놓고 말았다”고 강정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그는 ”그 일이 있기 전에 강정마을 주민들은 다들 한가족처럼 가깝게 왕래하고 누구 집 제사 있다 하면 우루루 몰려가서 제삿밥을 먹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공동체를 두 쪽으로 쪼개 놓았다“고 비판했다.

 강 주교는 ”강정의 아름답던 그 바닷가를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군사기지를 만들어버렸다"며 “제주에 와서 저는 국가가 저질러온 불의와 폭력을 속죄하기 위해, 평화를 위해 일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후로 저는 우리가 국가 없이 살 수는 없지만 국민을 섬기기보다 국민을 괴롭히는 국가는 감시하고, 브레이크를 걸고, 성토를 해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서 "제주에 와서 저는 왜 예수님이 이스라엘도 아니고 로마도 아닌 하느님의 나라라는 것을 자꾸 입에 올리셨는지 느끼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제주에 와서 저는 국가가 저지른 수많은 불의와 폭력을 속죄하기 위해 평화를 위해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서 "사람은 하느님이 만드셨고, 국가는 사람이 만들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들이 서로를 같은 하느님 자녀로 존중하고 아끼는 한가족이 되도록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강 주교는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나눠준 작은 리플렛에 담겨 있는 글을 잘 읽어보라면서 “여러분 모두가 평화를 위해 일하는 동지가 되어주시기 바란다”고 권유했다.

 2002년 10월부터 18년간 제4대 제주교구장으로 임한 강우일 주교는 1974년 사제품을 받고, 1986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서 주교품을 수품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비롯해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상임위원(2005~2013년), 사회위원회 위원(2013~2018년)으로 활동했다. 2016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과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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