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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지 개인전 ‘Whit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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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지 개인전 ‘White Garden’
  • 승인 2021.07.3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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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8월 12일,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김미지_021AU0704-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79x52x50cm_2021
김미지_021AU0704-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79x52x50cm_2021

 김미지 작가의 ‘화이트 정원(White Garden)’이 오는 8월 7일,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서 오픈해 8월 12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김미지 작가 개인전에는 입체와 설치를 포함해 화이트 정원을 드러내는 작품 총 50점이 전시된다.

 전시에서 김미지 작가는 50대 여성 작가가 자기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화이트 가든’이라는 가상의 정원을 만들어 보여준다. 작가는 예술가로서 힘든 시간을 지내오고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면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현재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묵묵히 나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애 단 한 번도 주인공이 돼 보지 못했던 여성이 겨우 한 몸 드러누울 정도의 작은 작업 공간에서 가장 행복하고 스스로 위안을 얻는다는 것에서 이 작업은 시작된다고.

▲ 김미지_021AU0752-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90x50x52cm_2021
▲ 김미지_021AU0752-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90x50x52cm_2021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처럼, 텃밭을 일구는 농부처럼, 상상력 가득한 예술가로서 자기 땅, 자신의 작업장에서 뭔가를 가꾸고 수확하듯 하루종일 작품을 떠내고 또 떠낸다.

 그리고 수천번의 행위로 얻어진 분신들(핫멜트로 떠낸 껍질들)을 하나하나 이어붙여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본인만의 화이트 정원을 만든다. 그리고 관객과 마주하고 조금이라도 위안과 공감을 전시작품에서 나누고자 한다.

 핫멜트는 가벼운 물건을 붙일 때 사용하는 스틱형 접착제로 글루건에 장착해 사용한다. 열을 가하면 액체로 변해 실처럼 쏘아 사용하고 식으면 약간 단단한 수지 물질로 바뀐다.

▲ 김미지_021AU0702-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71x56x48cm_2021
▲ 김미지_021AU0702-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71x56x48cm_2021

 기존 미술이 전시장 벽을 사용했다면 최근 설치 미술의 경향은 전시장 공간 전체를 같이 해석하고 작품으로 끌어들여 보여주는 예술 장르로 이해되며 실행된다.

 오늘날 주요 비엔날레와 세계적 아트페어마저도 절대다수의 작품이 입체와 설치 미술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이 작품을 그저 바라본다는 입장에서 벗어나 공간에 설치된 작품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다양한 감각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 김미지_021AU0706-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79x50x54cm_2021
▲ 김미지_021AU0706-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79x50x54cm_2021

 김미지 작가는 말한다 “나는 정원을 가꾼다. 자는 시간 빼고 몇 평 안 되는 자그마한 정원에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거나 꽃과 식물에게 물을 준다. 나는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풀숲에 펼쳐지는 조화로운 세계의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비참하고 보잘것없는 문학적 막노동꾼에 불과한 내가 총으로 쏘면 폭발하듯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블랙의 실들이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삐에로 마냥 춤을 춘다. 난 그 정원에서 아름다운 꿈을 가꾸며 산다. 그 시간 만큼 난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김미지 작가(1969~)는 대구가톨릭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김미지 작가는 자녀를 대학 보내고 다시 새롭게 작업을 시작한 대표적 경력단절 여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6년 전부터 가끔씩 그룹전과 기획전에 참여했으며, 올해 제주 돌담갤러리 개인전과 서울 인사동 동덕아트갤러리 기획초대전 전시를 성황리에 마쳤다.

 마침 그 전시가 인연이 되어 서울 세컨드에비뉴갤러리 초대를 받아 오는 10월에 다시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그동안 작업의 주제는 삶 속의 본인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작업들이라 할 수 있다. ‘내 생에 봄날은 간다’라든지 ‘오후 2시 30분’, ‘미자의 뜰’, ‘블랙 정원’, ‘화이트 정원’ 같은 한 여성의 소소한 삶에 대한 자기 독백 같은 이야기를 회화와 입체 그리고 최근에는 설치 미술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김미지 작가는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담소미술창작스튜디오(대표 김순관) 입주작가로 작업하고 있다.

▲ 김미지_021AU0707-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77x53x48cm_2021

 작품 화이트 정원(White Garden)은?

 #1 겨울 이야기 - 제주 작업장 두꺼운 커튼 너머로 색색거리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비행기 이륙 소리도 늦은 밤까지 들려온다. 잠시 커튼 너머 창밖을 보며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길을 나섰다. 저 너머 북녘땅이 보인다. 저기가 북한 땅이라고 말하지만 지인은 그냥 넘긴다. 한참 후 좀 전에 북한 뭐라고 했어? 지인이 되묻는다. 북한 땅이란 걸 지척에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채 반문하고 놀란다. 오늘도 임진강 너머 바람에 실려오는 방송 소리에 잠을 깬다. 새벽녘에는 더 또렷이 들리는 소리에 내가 이 땅 최북단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곳의 겨울은 눈물나게 춥다. 예술가의 삶도 그럴진대 파주의 한겨울은 집안의 싱크대 수도도 얼 만큼 더해져 더 춥다.

 작업실로 나서는 길은 편한 자유로를 두고 언제나 샛길로 간다. 들판으로 이어진 그 길은 청둥오리 천지다. 문득 그 새들을 바라보면 혹독한 겨울이 코앞까지 와 있구나 생각한다. 몸이 다시 움츠려든다. 차가운 콘크리트로 둘러쳐진 작업실은 수용소 느낌이 따로 없다. 차가운 냉기가 여전히 흐른다. 근처 교하 도서관 따뜻한 공기에 잠시 두 눈이 감긴다. 행복한 시간이 잠시 흐른다. 예술가란 타이틀이 고작 내 몸 하나 따뜻이 데울 정도의 여유가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따뜻한 샤먼에서 살던 생각이 떠오른다.

 #2 재료 이야기 - 동료이자 남편의 작업을 돕는다. 수년 전 도서관 프로젝트 작업을 도왔다. 천 권의 책을 해체하고 책꽂이에 설치하는 작업이다. 그 해체한 종이 페이지마다 글루건으로 핫멜트를 쏜다. 수천 페이지를 쏘는 데만 6개월 시간이 흐른다. 마음을 다잡고자 두꺼운 스치로폼으로 유리창을 가린다. 두꺼운 장막은 두 세 계절이 지나서야 걷어진다. 작품이 떠난 작업장 정리는 온전히 내 몫이다. 긁어내고 닦고 몇 날 며칠을 정리한다. 두 사람이 하는 예술은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다. 싸구려 재료에 자연스레 눈이 간다. 작업실 구석에 그렇게 긁어 모아둔 핫멜트에 햇볕이 든다. 볕에 반사되어 하얗게 반짝인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재료였나 생각한다. 재료의 선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김미지_021AU0709-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76x54x55cm_2021
▲ 김미지_021AU0709-화이트 정원 White Garden_핫멜트 와이어_76x54x55cm_2021

 #3 내 이야기 - 10년의 세월을 중국서 살았다. 이사도 많이 다녔다. 유목민 같은 생활은 습관처럼 뭔가 거대하고 고정적인 것을 사질 못한다. 꿈이였던 피아노 하나 빼고 언젠가는 이 나라를 떠나야 하니 가볍고 버려도 될 물건들이 집안을 하나씩 채운다. 한국에 돌아와 작업을 한다. 파주서 따뜻한 곳을 그리워해 몇 년 전 제주로 와 작업한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의 삶도 유목민의 삶처럼 여러 곳의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작업하다 보니 이곳 생활도 별반 그때와 다르지 않는다.

 #4 내 작업 이야기 -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모아온 나의 모든 것들을 하얀 핫멜트로 떠낸다. 무심히 덮혀지는 애장품을 바라본다. 핸드폰도, 목걸이도, 화장품도 이래저래 사다 모은 물건들이 하얀 핫멜트로 떠내진다. 여전히 번들거리는 물성은 내가 꿈꾸는 고상한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 햇빛에 더욱 반사되어 빤짝인다. 냄새도 내 감성하고 맞지 않는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을 정도로 글루건을 싸 된다. 뜨거운 재료는 손과 발에 훈장처럼 화상 자국을 남긴다. 문학적 막노동자의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떤 날은 높은 곳에 올라 마치 달빛 아래 무용수가 된 것처럼 글루건을 허공에 휘두른다. 실타래처럼 공기 중으로 쏟아져 나온 선들은 내가 애지중지 모아온 물건들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렇게 덮어진 껍질들을 곱게 달래듯 하루 종일 천천히 뜯어낸다. 어느 순간 모아둔 껍질들을 굵은 와이어 위에 뜨개질하듯 붙여 나간다. 무수히 떠낸 껍질들이 마치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곶자왈 여느 숲 모습처럼 작업실 공간에 하나하나 채워간다. 난 그곳에서 정원사가 되고 텃밭의 농부가 되고 진지한 예술가가 되어 그것들을 자르고 뜯고 어루만진다.

 작업을 해 오면서 내게 최면을 건다. 최고의 정원사로 최고의 농부로 화가로 나를 한껏 치켜세운다. 난 그 속에서 온전히 작가로의 삶을 만끽한다. 정원을 만들면서 난 스스로 당당한 작가로서의 존재성을 그곳에서만큼은 느낀다.

▲ 엽서
▲ 엽서

 #5 미술 이야기 - 현대미술은 내게 뭔가 하고 고민한다. 지난 전시에서 어떤 관람객이 블랙 정원을 보고 쓰레기를 전시장에 갖다 놓았다 말한다. 어떻게 그런 막말을 할까 싶다. 잠시 비켜 생각해 본다. 서구의 현대미술은 그 거리는 너무 멀리 가 있고 더 멀어지기 전에 거리를 좁히고자 발버둥친다. 그래서 쓰레기란 말도 감사하다. 내 작업이 현대미술로 더 가까이 가고 있음에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내 작업은 일상적 뭔가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뭔가가 그동안 미술에서는 쓰지 않은 핫멜트이고 그것을 통해 내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게 내 이야기이고 내 삶인데 그게 예뻤으면 하는 마음도 내 생각의 중심이다.

 태양에 비춰 흐느적거리는 실들을 본다. 이게 본드인 핫멜트란 생각이 안 든다. 전혀 새로운 물질로 등장한다. 난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게 놀랍고 자랑스럽다. 예술가는 이런 모습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게 이것으로 했어요?”란 질문이 내게 가장 가슴 뿌듯하게 들려온다.

 동토의 그 추운 날 난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눈물을 수도 없이 흘렸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예술이란 걸 느꼈다. 우연히 동료이자 남편의 작업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 작업이 블랙으로 화이트로 가슴 설레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 준다.

 세상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고 흐뭇해한다. 누가 말한다. 인간의 가장 인간적 행위가 예술이라 한다. 난 오늘도 내 이야기를 통해 내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나를 놓아둔다. 그 추운 겨울 난 손을 불며 작업을 했다. 그 기억이 이 작업 화이트 정원을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 된다. 그 겨울을 재현해 낸 것이 아니라 그 시절 나의 시간을 끄집어내 보여주고자 한다.

 그동안 내 삶에서 내가 주인공인 적이 없다. 누구의 엄마로 누구의 아내로 그렇게 살아왔다. 일상의 싸구려 재료지만 전시장에서만큼은 내 삶이 주인공이 되고 눈부시게 아름답게 만들어 보여주고 싶다. 비록 그게 정원으로 읽혀지지 않아도 상관없고 하늘의 구름처럼 읽혀 져도 상관없다. 분명한 건 그 속에 내 삶이 녹아 있고 지나간 시간 속에 그렇게 존재했던 나 자신의 모습들이 아름다운 화이트 정원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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