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돌담에 얹어보는 제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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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돌담에 얹어보는 제주 이야기
  • 승인 2020.02.0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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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희 시인, 숲해설가
▲ 윤상희 시인, 숲해설가

 제주 돌담은 제주 바람을 쓸어 담는다.

 현무암이 많은 거뭇거뭇한 색감을 가지런하게 모아내는 것이 제주 돌담이다

 오름에서 바다를 보면 돌담으로 시작하고 바다는 색이 더 진해진다. 바다에서 산쪽으로 보면 돌담이 오름을 한라산만큼 받드는 모습이다. 제주도 섬 전체에 돌담은 밑그림처럼 그려져 있다. 그 안에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담기는 먹거리와 이야깃거리는 또 얼마나 풍성한지

 붉은 동백꽃 한 송이 떨어진 돌담을 화폭에 담은 어느 화가의 작품 앞에서 발길을 뗄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유채꽃과도, 초가지붕과도, 귤 익어가는 색과도 어울리는 돌담은 그대로 제주 사람들이 살아왔던 줄거리가 된다. 척박한 섬에 유독 많았던 돌을 한 쪽으로 골라 바람 막아가며 농사지을 밭을 일구고 집으로 가는 길을 만들면서 바람과 함께 살았다.

 다듬지 않고 생긴 모습대로 거칠게 맞물려 있어서 돌담은 여간해서는 태풍에도 쓰러지지도 않는다. 모서리가 서로 맞대어 있지 않아 생긴 트멍으로 거친 표면에서 쪼개진 바람이 빠져나가게 하는 허술하고도 견고한 돌담이다

 제주 돌담은 돌만큼이나 많은 바람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바람을 달래가며 만들어낸 아름답고 고단한 시간인 것이다. 그 시간들을 지키고 새기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몫이어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돌담이 헐리고 줄어들고 있다.

 돌담을 헐고 카페가 즐비한 길이 되는 올레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내가 걷기에도 낯설고 당혹스럽다. 더군다나 돌담을 헐고 오름과 곶자왈을 망가뜨리고 바다를 메워서 번듯한 공항을 건설한다는 이야기는 청천벽력이다

 개발이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난개발을 넘어선 막개발이다. 얼마나 많은 나무를 베고 얼마나 많은 돌담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이제는 생각해야 한다

 파란(波瀾) 많았던 제주. 200년 출륙금지로 섬 전체가 유배된 시절도 있었고, 함부로 마구 수탈한 역사는 민란으로 항거했고, 일제에 의해 섬 전체가 전쟁기지가 되었던 실상이 드러나기도 전에 무자년 4월에 일었던 모진 피바람에도 지켜낸 땅이다. 제주 섬 전체가 유적지고 제주 사람들 모두가 유가족이다

 아직도 찾아야할 이름이 많고 늘어가는 쓰레기에 오수를 해결할 일들이 많은데 제2공항은 누구를 위한 개발이고 논리인지 모르겠다. 좁은 땅 제주에 공항 하나를 더 짓는다는 것을 인천국제공항을 설계한 프랑스의 세계적인 전문가들도 만류하고 있다.

 전문검증의 기회도 거부하고 공론화 과정도 없이 진행하는 것은 제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에 정작 제주도민의 결정을 도외시하는 처사다. 정말 이 시점에서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를 진지하게 되물어야 할 것이다

 제주의 풍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주는 올레길도 고맙기는 하지만 제주사람들이 살아가는 실핏줄 같은 올레길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파란 많고 바람 많은 제주에서 수눌며 만들었을 돌담이다.

 돌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서로 품을 나눠가며 만들어갔던 수눌음이 제주를 지켰던 것처럼 잘난 돌 하나로 만들 수 없는 돌담이고 제주다. 여럿이 모여 수눌며 지켜온 제주 땅이다. 지금은 돌담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제주 살리는 돌담과 덕담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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