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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조선왕조 제주가족들이 조상님 발자취를 찾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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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조선왕조 제주가족들이 조상님 발자취를 찾다 !
  • 승인 2022.11.1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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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9기·시조 李翰(이한) 사당 참배
▲ 이철헌 전주이씨대동종약원제주특별자치도지원장.
▲ 이철헌 전주이씨대동종약원제주특별자치도지원장.

 우리나라의 왕릉가운데 600여년의 장구한 세월 속에서도 원형 그대로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조선 왕릉(王陵)은 모두 42기로 이중 북한에 모셔진 정종과 태조 고황제의 첫부인 한씨 릉(陵)을 제외한 40기의 왕릉이 우리나라 수도권 중심으로 산재해 있다.

 특히, 세계 여러나라의 왕조와는 달리 왕과 왕비의 릉 전부가 완벽하게 보존·관리되고 제례문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풍수지리에 의한 최고의 명당인 양지바른 보금자리와 주변에 넓고 푸른 잔디, 울창한 숲지대 보존으로 왕의 숨결과 대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경사스러운 陵(릉)으로 인정받아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이처럼 신성한 왕릉에서 조상님의 숨결을 느끼며, 숭고한 견학과 경건한 참배를 위해 조선왕가의 후손인 조선왕조제주가족들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제주특별자치도지원(회장 이철헌, 계성군파 제주특별자치도종친회장)에서 주최·주관하고 도내 8파 종친회 후원하에 지난 11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동안 대동종약원제주도지원 임원·이사를 비롯한 여성·청년회원, 그리고 종친가족 등 8파 종친회 81명이 참여한 가운데 첫날부터 이틀간 조선왕조를 건국하신 태조고황제릉를 비롯한 태종대왕릉 등 수도권 일원의 왕릉 9기를 면전에서 대왕님의 숨결을 들으며 숭고한 견학과 경건한 참배를 함께하며 우리는 영원한 한 핏줄임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의 장을 열어나갔다.

▲ 태조고황제릉 참배 후 기념 촬영.
▲ 태조고황제릉 참배 후 기념 촬영.

 3일째인 마지막 날에는 始祖이신 이한(李翰) 사당과 묘원, 경기전과 태조 어진박물관의 견학·참배를 많은 종친가족들의 참여하에 성황리에 마치며 조선왕릉과 조선왕조 태동지 견학·참배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러한 왕릉 참배 의식은 역대 웃대조 선조(先祖) 대왕부터 차례대로 답사, 참배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그럴 경우 6일 이상의 기간이 소요됨에 따라 종친가족들의 바쁜 일정 등을 감안해 이번 왕릉 참배는 공적이 많은 대왕과 지리적 여건 등 참배 일정을 최대한 단축해야 했다.

 첫날(11월 5일)은 제주공항 07시 출발을 시작으로 김포공항을 거쳐 10시〜11시30분, 화성 健陵(건릉)에 모셔진 22대 정조대왕, 효의 왕후를 답사하며 정조대왕의 바른 정치와 서얼과 평민 지위를 개선하는 등 애민사상을 바탕으로한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를 실현한 개혁 군주였음을 기억하며 참배에 정성을 다했다.

▲ 태종대왕․원경왕후릉 참배후 기념 촬영.
▲ 태종대왕·원경왕후릉 참배후 기념 촬영.

 오후 1시40분〜2시30분, 서초구 獻陵(헌릉)에 조선 3대 태종대왕과 원경왕후를 견학·참배하면서 대왕의 조선개국 1등 공신임은 물론 고려시대 호족세력의 뿌리인 사병을 혁파하고 왕권을 강화해 조선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다지신 위대한 대왕의 업적을 기렸다.    

 2시 50분〜4시 30분, 강남구 宣靖陵(선정릉)에 9대 성종대왕, 정현왕후에게 배례하며, 대왕께서 국가 통치체제(경국대전)를 완성하고 훈구세력을 견제하며 왕도의 길을 걸었다는 대왕의 의지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어 반정 공신세력들에 의해 등극된 11대 중종대왕을 참배하며 집권 초기에 공신세력들의 월권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림세력과 외척세력 사이에서 왕도정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을 상기하며 첫날 일정을 대과없이 마쳤다.

 둘쨋날(11월 6일)은 오전 10시〜11시, 남양주 光陵(광릉)에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기반을 구축하고 科田法(과전법)을 職田法(직전법)으로 개혁해 늘어난 양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줘 점심을 정착시키는데 기여한 조선 7대 세조대왕, 정희왕후의 숨결을 들으며 숭고한 견학과 경건하게 참배했다.

 11시〜12시, 가장 많은 왕릉(17릉-왕릉 7· 왕비 10)을 모신 구리 東九陵에 도착해 우선 고려말의 전설적인 명장이자 민본사상을 바탕으로한 조선왕조 창업 군주인 태조 고황제 健元陵(건원릉)을 견학, 참배한데 이어 12시〜12시30분, 元陵(원릉)에 모셔진 21대 영조대왕, 정순왕후를 참배하며 사회 각 분야에 문예부흥을 이룩한 최장수 임금(83세)이자, 최장수(51년 7월) 집권한 군주로 기억하며 관람했다.

 오후에는 여주로 이동해 2시 30분〜3시 20분, 英陵(영릉)에 모셔진 조선 4대 국왕인 세종대왕, 소헌왕후 릉을 참배하면서, 한글 창제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민족 문화의 번영 등 국가발전과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聖君(성군)으로 기록된 역사를 반추했다.

 오후 3시 30분〜4시, 寧陵(영릉)에 모셔진 17대 효종대왕은 민생 안정과 북벌계획 등 조선 중흥의 기틀을 다지다 급작스럽게 승하한 국왕임을 아쉬워하며, 이틀간 경사스런 9왕릉에서 조상님이신 대왕님들에 대한 견학과 참배의 대미를 장식하며 본향인 전주시로 향했다.

▲ 시조 이한 사당 참배 후 기념 촬영.
▲ 시조 이한 사당 참배 후 기념 촬영.

 3일쨋날은 09시〜10시 20분, 전주이씨 始祖(시조) 신라 사공 李翰(이한)公의 명당인 양지바른 보금자리이자 경사스런 묘원인 肇慶壇(조경단)을 답사 참배한 것을 비롯해 2세〜17세까지 조상님의 위폐를 모시게될 承慶院(승경원)의 건축 현장을 둘러보았다.

 이어 10시30분〜11시 30분, 시조의 위패를 봉안한 肇慶廟(조경묘)와 태조고황제의 초상화(국보 제317호)를 모신 慶基殿(경기전)을 견학하며, 제관으로 이영대 자문위원을 비롯해 창언·철홍·정구 원로 종친(이상 계성군파), 창근 자문위원(안양군파) 등 5분의 원로 종친들을 선정해 함께 참배하며 조선왕조의 창업이 신성함과 당위성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태조어진박물관(보물 제931호)을 찾아 세종대왕을 비롯한 영조, 정조, 철종, 고종 그리고 순종 등 여섯 분 임금의 어진전시장을 둘러보며 27대왕 519년간의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가 되었다.

▲ 시조 이한 조경묘 참배 후 기념 촬영.
▲ 시조 이한 조경묘 참배 후 기념 촬영.

 조선시대 왕릉은 도심지(도성의 10리밖〜40십리 이내)에 가까우면서도 맑은 공기와 삼림욕하기에 좋은 넓고 푸른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대자연의 정기를 이어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당 자리이자 천연 생태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왕릉은 시대에 따라, 나라와 권력의 정도에 따라, 지형에 따라 모양과 형태를 달리하고 있으나, 왕릉의 그 위상과 규모에 비해 사업비, 부역 등을 줄이려는 흔적들이 있어 다른 왕조와는 달리 백성들을 위한 애민사상과 민본사상을 바탕에 둔 왕조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가족과 자녀 등 언제나, 누구든지 함께할 수 있는 숭고하고 경건한 참배의식을 통해 조상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뿐만 아니라, 최적의 정원으로도 손색이 없음을 한눈에 알 수가 있다.

 이러한 경사스러운 역대 왕릉을 방문한 대동종약원제주특별자치도지원 임원·이사는 물론 여성회·청년회원 및 종친가족들이 함께하는 대동종약원 시·도지원 단위의 대규모 참배단이 전국에서 처음 시행해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킴으로써, 지역사회 발전에도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함은 물론 종친가족의 단합을 모색해 나가는데도 조선왕조 제주가족들이 앞장서서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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