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백남준이 불러낸 마르코 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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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백남준이 불러낸 마르코 폴로
  • 승인 2020.06.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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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백남준의 '마르코 폴로'. 조성관 작가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갤러리현대의 50년 기념전(5월12일~5월28일)이 막을 내렸다. 김기창 김창렬 박수근 백남준 오지호 유영국 이성자 이우환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한데 모여 전시되었다.

 이 기념전은 5월30일까지 예정되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이틀 앞당겨 종료되는 바람에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나는 이 전시회를 개막 전부터 꼭 보겠다고 별렀다. Nam June Paik,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전시되기 때문이었다. 백남준은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독일 대표 2인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백남준은 '마르코 폴로'를 출품했고,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나는 이 사실을 '뉴욕이 사랑한 천재들'에 썼지만 '마르코 폴로'를 실물로 보지는 못했었다.

 마르코 폴로(1254~1324)가 동방을 여행하면서 이용한 주요 교통수단은 말과 낙타였다. 마르코는 베네치아에서 출발해 3년 반 만에 몽골제국의 최고권력자 쿠빌라이 칸의 궁전에 도착했다. 칸의 거처는 '그때까지 본 궁전 중 가장 큰 대리석 궁전'이었다. 마르코는 칸의 특사가 되어 제국의 여러 지방에 파견됐고, 그는 '동방의 서로 다른 지역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이' 여행했다.

마르코 폴로

 그가 중국에서 17년을 보내고 다시 3년 반의 여행길 끝에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24년간 고향을 떠나 있었던 탓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얼굴과 말투가 중국 사람처럼 보여 사람들은 한동안 마르코를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 뒤 1298년 베네치아는 제노바와 지중해 제해권(制海權)을 놓고 해전을 치르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지중해 해상무역으로 가장 번성한 두 도시가 베네치아와 제노바였다. 마르코는 이 해전에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해전에서 패하면서 마르코는 포로로 잡힌다. 그는 제노바에서 1년여간 감옥생활을 한다. 그가 감옥에서 풀려난 것은 1299년, 두 도시가 평화조약을 체결한 후다.

 마르코는 제노바의 감옥에서 우연히 피사 사람 루스티켈로를 만난다. 사탑(斜塔)이 있는 그 피사다. 그 역시 마르코와 처지가 비슷했다. 피사가 제노바와 벌인 전투에서 제노바에 포로로 잡혀 온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금방 마음이 통했다.

1503년 스페인에서 출판된 '세상에 대한 설명' 표지

 감옥에서 우연히 만난 루스티켈로

 여기서 우연이 중첩된다. 우연히 만난 루스티켈로가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루스티켈로는 기사도 시대의 모험담을 쓰는 작가였다. 당시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나오기 전. 어떤 사람이 책을 보려면 필사(筆寫)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루스티켈로는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마르코의 모험담을 들으면서 표정이 어땠을까 하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루스티켈로는 마르코와 의기투합했다. 마르코는 고향집으로 사람을 보내 여행일지를 가져오게 한다.

 마르코는 감옥에서 여행일지를 보면서 모험담을 설명해 나갔고, 루스티켈로는 이를 글로 옮겼다. 마르코는 고향으로 돌아가 루스티켈로가 쓴 글을 조금 고쳐 책으로 내놓았다. '마르코 폴로의 세상에 대한 설명.'

 이 책이 일본에서 '동방견문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한국에 들어왔다. '마르코 폴로의 세상에 대한 설명'은 지금 생각해 보면 기막히게 잘 지은 제목이다.

 지구가 평평한 육지라고 믿던 시대에 지중해와 서쪽 바다가 바다의 전부라고 믿던 시대에 유럽 사람들은 동쪽에 있는 동방(東邦)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아시아(asia)는 동쪽을 뜻하는 아수(assu)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에 지명을 뜻하는 라틴어 접미사 '-ia'가 붙어 asia가 되었다.

 이후 마르코는 상인으로 살며 평온한 말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세상에 대한 설명'은 필사로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이 흥미진진한 미지의 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유럽의 다른 왕국까지 퍼져나갔다.

 '세상에 대한 설명'은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번역본까지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 나라마다 다양한 삽화가 추가되어 수십 개의 판본이 유통되었다. 성경을 제외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모험가들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모험가들은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1453년 동로마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제국에 함락되면서 유럽은 혼돈에 빠졌다. 기독교 제국의 성지이면서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던 콘스탄티노플의 몰락은 전통적인 대상(隊商) 교역로인 비단길을 막아버렸다.

 한번 정향, 육두구 같은 인도의 향신료에 맛 들인 유럽 왕실과 귀족들은 어떤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지속적인 소비를 갈망했다. 수요는 늘어나는 데 공급이 끊긴 상황. 인간의 욕망은 지중해를 벗어나 미지의 바다로 눈을 돌렸다. 서쪽 바다 저편의 인도를 열망했다. 배를 타고 서쪽 먼바다에 있는 인도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일확천금은 시간문제다. 대항해 시대는 이렇게 개막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산타 마리아 호

 콜럼버스를 움직인 책 '동방견문록'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이다. 콜럼버스는 우여곡절 끝에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는 데 성공한다. 1492년 8월 3일 팔로스항에서 인도를 향해 닻을 올렸다. 인도를 찾아 서쪽 바다로 떠날 때 그가 들고 간 책은 성경이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설명'이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마르코 폴로뿐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1254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을 때 베네치아는 유럽 대륙과 동방을 잇는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다. 제노바도 해상무역이 활발했지만 흑해와 가까운 곳은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의 거리는 피부색이 다르고 여러 나라 말을 쓰는 뱃사람과 상인들로 언제나 북적거렸다. 베네치아 거리에는 흑해를 통해 들어온 동방의 진귀한 물품들과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마르코 집안은 대대로 무역업에 종사했다. 마르코 폴로의 아버지 니콜로는 동생 마페오와 함께 무역업을 했다. 1260년 마르코가 여섯 살 때 니콜로와 마페오는 가방에 보석을 가득 담고 러시아 서쪽의 왕국을 향해 출발했다. 몇 개월을 예정하고 출발한 흑해를 통해 들어가는 여행길은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가족들은 니콜로와 마페오에게 무슨 변고가 생겼다고 믿었다.

 그러는 사이 마르코의 어머니가 병으로 죽자 어린 마르코는 친척집에 맡겨졌다. 마르코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삼촌이 9년 만에 돌아왔다. 마르코는 아버지와 삼촌으로부터 9년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연히 몽골 사절단을 만나 쿠빌라이 칸의 궁전에 초대를 받는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의 궁전에 도착하는 장면은 수많은 삽화가에 의해 그려졌다. 이 그림은 1901년 미국에서 나온 판본에 실린 삽화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몽골인은 공포의 이름이었다. 마치 로마인이 이름만으로도 벌벌 떨었던 훈족의 아틸라 같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니콜로와 마페오가 만난 몽골인은 야만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 사람은 호기심에 몽골제국 황제의 거처를 가보기로 한다.

 1년여 만에 궁전에 도착한 두 사람은 쿠빌라이의 환대를 받는다. 쿠빌라이는 두 사람이 들려주는 가톨릭 세계의 신기한 이야기에 흡족해한다. 쿠빌라이는 가톨릭 교황 클레멘스 4세에 친서를 보내기로 한다.

 '기독교 신앙과 서양지식을 잘 아는 사람 100명을 보내 달라.'

 두 사람은 무사통과를 보장하는 귀빈 여권인 '황금 서판'을 들고 궁전을 출발했다. 하지만 3년이 걸려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 클레멘스 4세는 서거한 뒤였다.

 이들은 새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가 선출될 때까지 2년을 기다려야 했다. 두 사람은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열일곱 살 마르코가 합류했다. 세 사람은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서 교황에 친서를 전달했다. 교황은 학식 있는 사람 100명 대신 도미니쿠스 수도회 수사 2명을 동행케 했다.

 다섯 사람은 무장한 대상 행렬에 합류해 말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가까스로 페르시아(현재의 이란)에 도착했을 때 수사 두 명은 고생길에 두 손을 든다. 교황의 친서와 선물을 니콜로에게 맡기고 돌아갔다. 세 사람은 3년 반만에 쿠빌라이의 궁전이 있는 대도(현 베이징)에 도착했다. 쿠빌라이는 총명한 마르코를 신임했다.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결과 마르코는 중국에서 자그마치 17년을 보낸다.

 루스트켈로가 쓴 '세상에 대한 설명'은 마르코가 24년간 경험하고 들은 이야기다. 백남준의 작품 '마르코 폴로'를 다시 살펴본다.

 1993년 백남준은 폐차장에서 뼈대만 남은 자동차를 가져다 본닛 위에 꽃을 장식했다. 그리고 TV 화면을 여러 개를 달았다. 화면에는 세상 풍경이 휙휙 돌아간다. 마르코는 자동차가 고장 나 멈춰 설 때까지 동방을 여행하고 지금 막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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