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동방견문록'에는 무엇이 담겨있나?
상태바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동방견문록'에는 무엇이 담겨있나?
  • 승인 2020.06.12 0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3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전시된 '마르코 폴로' 포스터. 조성관 작가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갤러리현대는 50주년 기념전에서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마르코 폴로 포스터'를 전시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이 포스터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백남준이 멜빵 바지에 흰색 셔츠를 받쳐 입고 포즈를 취한 마르코 폴로 포스터와 실물 '마르코 폴로'를 번갈아 보면서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현장 분위기를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전시회가 개막되자 관계자들과 관람객들은 '마르코 폴로'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백남준의 천재성에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파르르 떨었다.

 독일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독일 대표를 파견하면서 독일 국적이 아닌 미국 국적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선발했다.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있는 비디오 아트(Video Art)가 씨앗을 뿌리고 잉태한 곳이 독일이라는 자부심의 소산이었다.

 독일이 백남준을 키웠다, 국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백남준은 요셉 보이스와 함께 독일의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다. 독일 언론도 이런 결정에 저급한 시비를 걸지 않았다.

출판사 사계절에서 출간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세계역사는 '동방견문록' 전후로 나뉜다

 백남준은 이런 독일의 기대에 100% 부응했다. 베네치아가 어디인가. 물의 도시? 곤돌라의 도시? 페스트의 도시? 베네치아는 마르코 폴로를 키운 코스모폴리탄 도시였다.

 마르코 폴로가 누구인가. '동방견문록'이 나온 후 가톨릭의 유럽 세계는 비로소 동방 세계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했다. 인도와 중국의 문명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두게 되었다. 세계는 '동방견문록'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동방견문록'이 세계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라는 영광스러운 전시회에 초청받은 백남준은 '동방견문록'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했다. 비디오아트만이 창조할 수 있는 20세기 동방견문록을 만들어냈다. 백남준이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타타르족 복장을 한 마르코 폴로. 제작년대 미상. 위키피디아

 마르코가 몽골제국 쿠빌라이 칸의 궁전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년 반. 그리고 17년간 몽골제국에 머물며 쿠빌라이의 특사 자격으로 제국 여러 곳을 여행하며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마르코는 쿠빌라이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새로운 풍습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쿠빌라이는 그런 마르코를 총애했다. 지금부터는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마르코가 본 것들을 살펴보자.

 "이 기름은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불이 잘 붙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낙타의 가려움증과 부스럼을 치료하는 연고로도 쓰인다. 멀리서도 사람들이 가져오려고 오며, 인근 지역에서는 등잔에 이 기름만 사용한다."

 이 대목은 카스피해 근처에서 석유가 솟아나는 것을 목격하고 쓴 기록이다. 카스피해 근처는 지금도 세계 3위의 매장량으로 추정되는 유전 지대다. 마르코는 유전이 솟아나는 걸 본 최초의 유럽인이다.

 마르코는 사막에서 모래폭풍도 경험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파미르 고원으로 들어섰다. 해발 4500m가 넘는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넘는 데 두 달이 걸렸다.

 "높이와 추위 때문에 새 한 마리 날지 못한다." "불을 피워도 잘 타지 않고 평소처럼 열을 내뿜지도 못하며 음식을 요리하기도 힘들다."

 중국 국경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하는 사막이라는 뜻에서 '타클라마칸'이라고 불렸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독일 면적과 비슷하다.

쿠빌라이 칸의 궁전이 있는 대도(현 베이징) 세밀화. 15세기의 이탈리아 수사가 동방견문록을 토대로 그린 삽화.

 '지팡구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금이 난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무사히 통과해 일단 몽골제국의 영토에 들어서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시시각각 쿠빌라이 칸에게 보고되었다. 1275년 봄, 마침내 쿠빌라이의 궁전에 도착했다. 장장 1만2800km의 여정이었다.

 마르코는 쿠빌라이가 길들인 사자를 무릎 앞에 앉힌 채 보좌에 앉아 있다고 묘사했다.

 "다부져 보이는 체격과 검고 잘생긴 두 눈에 염소수염을 기르고 혈색이 불그스름한 60대 남자" "백성의 숫자에서나, 영토의 크기에서나, 보물이 값어치에서나 세상 통틀어 가장 강력한 지배자" "위대한 칸은 필요할 때마다 정자를 해체해 어디든 다닐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설계하게 했다. 여기에 200개가 넘는 비단 끈이 대나무를 엮어 정자의 모양을 잡아준다"

 마르코는 궁전의 규모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궁전 연회실은 6000명의 손님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는 식이다.

 쿠빌라이는 총명하고 처신을 잘하는 마르코를 좋아했다. 페르시아 사람이든 아라비아 사람이든 국적을 가리지 않고 중용한 쿠빌라이는 마르코를 곁에 두고 특사로 활용했다. 마르코는 칸의 특사 자격으로 티베트, 버마, 윈난성까지도 방문했다. 윈난성에서 '매우 큰 구렁이'를 목격하기도 한다.

 "이 뱀이 얼마나 큰지 보는 사람마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이며 생긴 것도 아주 징그럽다. 그것이 얼마나 크고 굵은지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겠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어떤 것은 길이가 10보나 되며 10뼘이나 될 정도로 굵은데 그 정도면 가장 큰 것이다. 머리에 가까운 앞부분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는데, 거기에 발은 달려 있지 않고 다만 매나 사자의 발톱과 같은 것이 하나 있을 뿐이다.

 머리 역시 굉장히 크고 눈은 빵 덩어리보다 더 크며, 입 또한 얼마나 큰지 단번에 사람을 삼킬 정도다. 이빨도 매우 크다. 이처럼 끔찍하고도 크고 무섭게 생겼기 때문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두려워한다. 그러나 길이가 8보, 혹은 6보나 5보 정도 되는 작은 것들도 있다."

쿠빌라이 칸의 사냥용 정자. 15세기 프랑스에서 발행된 동방견문록에 들어있는 삽화.

 마르코가 묘사한 '큰 구렁이'의 정체는 뭘까? 바람결에도 들어본 적도 없는 짐승. 유럽인의 눈에 비친 악어의 모습이다. 마르코는 '큰 구렁이' 사냥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마르코는 중국인들이 종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종이보다 더 놀란 것은 쿠빌라이의 종교관이었다. 유럽의 기독교 왕들은 단일 종교를 강제했지만 쿠빌라이는 종교가 제각각인 민족을 지배하면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쿠빌라이는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불교의 축일과 축제를 지켰다.

 마르코는 킨사이(지금의 항저우)를 방문하기도 했다. 킨사이는 남송(南宋)의 수도였고, 운하가 발달한 도시다. 베네치아도 운하의 도시였지만 그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마르코는 킨사이에 대한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최고의 도시라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항저우에 세워진 마르코 폴로 동상. 위키피디아

 폴로 일행은 중국에 머무는 17년간 무역업과 칸의 선물로 인해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다. 폴로 일행은 간신히 쿠빌라이의 허락을 받아 귀향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전쟁이 수시로 벌어지는 위험한 육로가 아닌 바닷길을 선택했다. 중국 범선을 타고 일행은 말레이시아 해안‧수마트라섬을 거쳐 인도 남부에 상륙했다. 인도의 끔찍한 더위에 헉헉거렸지만 동시에 힌두교도의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1295년에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24년 만의 귀향이었다. 중국~베네치아를 오가는 데 7년. 중국에서 머문 기간 17년.

 '동방견문록'은 14~15세기 유럽 국왕들의 필독서였다. 연구가들은 이 책이 여행기보다는 지리지(誌)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마르코는 여러 곳에서 오류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여행 일지를 썼지만 연도를 잘못 기록하기도 했고, 부분적으로 과장하기도 했다.

 특히 전해 들은 이야기를 쓴 부분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사람 몸에 개 머리를 한 견인(犬人)이 사는 곳이 있다는 설명이 그런 것이다. '동방견문록'에는 중국 동쪽 해상 1500마일 떨어진 섬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그곳에서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금이 나기 때문에 금이 대단히 많다. 그러나 아무도 그 섬에서 금을 가지고 나오지 못하는데, 그것은 어떤 상인도 어떤 사람도 대륙에서 그곳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지팡구' 섬이다. 일본국(日本國)의 중국 발음이 '지팡구'다. 마르코가 이 책에 '지팡구'로 기록하는 바람에 일본은 유럽에 지팡구로 처음 알려졌다. 지팡구가 재팬(Japan)의 어원이다. 물론 금 이야기는 낭설이다. 그러나 지팡구 관련 설명 중에는 사실도 있다. 몽골제국이 함대를 보내 지팡구 점령에 나섰지만 재난 때문에 정복하는 데 실패했다는 기록이다. 그 재난은 태풍이다.

 '동방견문록'의 내용을 두고 마르코는 거짓말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워낙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어서였다. 1324년 마르코가 위독해지자 친구와 친지들이 모여 진실을 고백하고 하느님을 만나라고 그를 설득했다. 마르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만 말했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