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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억 그림전 – 청산이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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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억 그림전 – 청산이도의 기억’
  • 승인 2021.11.0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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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트라우마센터, 현상지 유족 4․3기억 그림전 개최

 4․3트라우마센터(센터장 정영은)는 4․3 당시 고난의 피신생활 중 8명의 가족이 희생당한 현상지(노형동 개진이 왓 출신, 91세) 유족의 ‘4․3기억 그림전 – 청산이도의 기억’을 4․3트라우마센터에서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생존희생자협회가 후원한다. 개막행사는 11월 9일 오전 11시, 4․3트라우마센터에서 열리며, 12월 10일까지 전시된다.

 이번 그림전시회의 핵심은 현상지의 4․3의 기억 속에 각인된 것으로 가장 생생한 이미지인 가족과 고향마을 사람들의 죽음이다. 1948년 11월, 불타는 고향마을 노형을 등지고 해안마을 이호리로 강제 소개된 후 1948년 12월 6일 호병밭에서 큰형이 토벌대에게 총살되는 장면과 고향마을 사람들이 집단학살되는 충격적인 장면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고통으로 남아 현상지 유족은 이를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이후 피난 행로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남동생, 두 명의 조카가 토벌대의 철장에 맞아 유혈이 낭자한 모습은 너무도 생생하다. 4․3의 와중에서 10명의 가족 중 자신과 어머니를 제외한 8명이 희생됐다.

 현상지의 기억 속에 각인된 또 다른 중요한 이미지는 눈 덮인 한라산에서 처절한 생존의 기억이다. 피난민으로 한라산으로 내몰린 그는 ‘폭도’로 규정되어 생사의 길을 넘나들었다. 한라산 정상부 근처인 ‘청산이도’(작은 두레왓 인근) 까지 모두 7차례의 피난 생활을 하면서 산속의 동굴과 움막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치열한 이미지는 박격포와 미군 비행기까지 동원된 토벌대의 집요한 추격과 청산이도 토벌 작전이었다.

 한라산의 피난 생활은 여러 증언이 있지만 현상지의 그림에 등장하는 피난 생활의 처절하고도 생생한 이미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파편들이다.

 현상지 그림전은 역사는 스토리가 아닌 한편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현상지는 4․3의 처참한 죽음과 생존을 위한 필사의 탈출을 이미지로 기억한다. 현상지 4․3 기억 그림전이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상지 4․3기억 그림전은 4․3의 진실을 전하는 한편의 기록영화라 할 수 있다.

 아직도 생생한 4․3당시의 기억을 손그림으로 그려낸 현상지 어른은 “동시대의 수많은 제주인의 고단했던 삶에 이 작은 전시를 바친다”고 말했다.

 ◆ 현상지 유족 4․3 희생 및 피신 약사

 ▶ 현상지(玄庠智, 1930년생, 2021년 91세) • 1930년 노형동(개진이) 출생 • 1947년 늦은 초등학생으로 3·1사건 목격 1948년 11월 19일 노형마을이 전소되는 장면 목격 •1948년 12월 7일 소개되어 이호리 호병밭에서 큰형 총살 당함 • 1948년 12월 13일 이호 큰가름에서 마을주민 집단학살 목격 • 1949년 1월 22일 노형 베염나리 계곡 근처에서 아버지 등 가족 5명 철창으로 도륙된 모습 목격 • 1949년 1월부터 3개월간 피난길 • 노형동 베염나리→걸시오름 움막→구분동산 움막→큰두레왓 영덕궤→청산이도 움막→ Y계곡 안먹돌궤 등으로 토벌대에 쫓겨 다님 • 1949년 3월 백기를 들고 오라파출소로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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